부인님과 함께 진행하던 에저튼의 <구식의 충격: 20세기 기술과 세계사> 번역 원고를 드디어 지난 달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원래의 예정일보다 거의 1년이나 늦게 원고를 넘겼지만, 출판사의 관계자분께서는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여러 일들도 많았습니다만, 무사히 번역 마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여나 제가 진행하는 데 있어 언짢게 해드린 부분 있으셨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ㅜㅜ
언짢기는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희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_-;;
어쨌든, 교정이 남았기 때문에 실제 출판일은 내년 3월은 넘어야 할 것 같은데, 혹시라도 원고를 읽고 비문이나 오탈자를 잡아주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이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메일로 원고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맛보기로 책의 일부를 보여드립니다.^^
말, 노새, 황소
인간의 목적을 위한 말의 사용은 수천 년 전에 발명되었다. 말의 번식, 사육, 훈련, 유지는 야생에 존재하지 않던 동물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일이었다. 만약 말의 힘이 최대로 사용된 시대를 결정한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최근이 될 것이다. 20세기의 말은 전(前)기계 시대의 잔재가 아니었다. 말에 의해 굴러가는 1900년의 거대한 도시는 새로운 도시였다. 1900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산업화된 국가인 영국에서, 수송을 위한 말의 사용은 19세기 초가 아니라 20세기 초에 정점을 찍었다. 어떻게 ‘철마’가 끄는 기차의 시대에 말이 끄는 수송 수단이 함께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답은 경제 개발과 도시화가 더 많은 승합 마차, 화물 마차, 소형 마차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기차와 배가 상품의 장거리 수송을 담당했다면, 짧은 거리에서는 마차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일례로, 거대한 철도 조차장과 운하 시스템의 교차점에 있는 런던 캠든 시장(Camden Market)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곳의 수많은 낡은 건물들이 마구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건물들은 근처 리전트 파크(Regent's Park)의 승마용 동물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 화물 견인용 동물들을 위한 곳이었다. 1924년 당시 가장 크고 가장 혁신적인 영국 철도 회사 LMS(London, Middleland and Scottish)는 자신이 보유한 기관차(1,0000대)만큼이나 많은 수의 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그 회사가 보유한 자동차는 1,000대를 겨우 넘겼을 뿐이었다. 1930년 당시 LNER(London and North Eastern Railway)은 7,000대의 증기기관차와 5,000마리의 말, 그리고 겨우 800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914년 경 세계의 가장 부유한 도시들에서, 말이 끄는 수송수단이 동력 엔진을 단 버스, 화물차, 승용차나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농업의 경우, 말의 최고 전성기는 보다 늦게 찾아왔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말 개체수는 1950년대에 정점을 찍었는데, 이는 목재를 벌채하는 데 말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가장 생생한 사례를 제공한다. 농사용 말의 이용은 1915년에 최고치에 도달했는데, 당시 미국 농장에서는 2100만 마리가 넘는 말이 이용되고 있었다. 이는 1880년의 1100만 마리에서 증가한 수치로,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이때의 수준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국의 사례는 특별히 흥미를 끄는데, 왜냐하면 20세기 초 미국의 농업은 고도로 기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말의 힘에 의존한 농업이었다. 우리는 시골에서의 말에 대한 의존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농사용 말의 이용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당시, 경작지의 3분의 1 정도는 말을 유지하는 데 쓰였다. 말은 풀, 건초, 곡물의 거대 소비자였다. [이러한] 기계화된 농업 덕분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거대 국가이자 1910년 무렵 단연코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이 될 수 있었다.
20세기 삶의 한 영역에서, 수송용 말의 사용은 특히 두드러졌다. 1, 2차 세계 대전은 산업화된 전쟁이자 공학과 과학과 조직화의 위업으로 간주된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 때문에 두 전쟁에는 엄청난 수의 말이 사람처럼 징집되었다. 모든 교전국은 말에 의존했으며, 노새를 비롯해 짐을 나르는 다른 동물에도 의존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 소규모의 영국 군대는 25,000마리의 말을 가지고 있었지만 1917년 중반 대규모의 최신 영국 군대는 591,000마리의 말과 213,000마리의 노새, 47,000마리의 낙타, 11,000마리의 황소를 보유하게 되었다. 1917년 말 서부 전선에만 368,000마리의 영국 말과 82,000마리의 영국 노새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이 수치는 그곳에 배치된 영국 자동차의 수를 훨씬 상회했다. 이는 기병에 대한 과소평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탈 것으로 이용된 말은 서부 전선에 배치된 영국 말 중에 겨우 1/3에 불과했으며(그리고 이 중 일부만이 기병 부대에 속해 있었다), 대다수는 현대전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물량을 수송하는 데, 특히 철도의 종점에서 전선까지 운반하는 데, 이용됐다. 이러한 동물 이용은 영국 내에 존재하는 말을 활용하기 위한 예외적인 응급 조치가 아니었다. 말은 정말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동물이었고, 그래서 영국은 429,000마리의 말과 275,000마리의 노새를 미국에서 사들였으며, 막대한 양의 사료도 수입했다. 세계 말 시장을 활용하는 영국의 능력은 영국 군사력에 핵심적이었다. 영국만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1918년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미국 군대는 각 대규모 보병 사단마다 2,000마리의 견인용 말을 비롯해 2,000마리의 타는 말과 2,700마리 이상의 노새를 갖추었다. 이는 병사 4명당 말 또는 노새 1마리가 있는 셈이었다.
말의 지속적인 중요성을 보여주는 보다 적나라한 예는 2차 세계 대전이다. 흔히 장갑 편대 중심으로 그려졌던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군대는 1차 세계 대전 때의 영국 군대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말을 갖추고 있었다. 말은 ‘독일 군대의 기초 수송수단’이었다. 1930년대 독일의 재무장은 말의 대량 구매를 뜻했으며, 그리하여 1939년 무렵 독일 군대는 590,000마리의 말을 갖추는 한편 독일의 나머지 지역에 3백만 마리를 남겨두었다. 각 보병 사단은 스스로를 옮기는 데 약 5,000마리의 말이 필요했다. 1941년 소련 침공을 위해서는 625,000마리의 말이 소집됐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독일의 말 군대는 점점 더 거대해졌고, 결국 독일군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들의 농업용 말을 약탈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45년 초 독일군은 120만 마리의 말을 갖추었다. 그리고 전쟁 중 손실된 말의 총수는 15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이 과거 그 어느 전쟁보다도 더 많은 수의 말을 전투에서 볼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방식의 수송 수단이 사용되긴 했지만, 병사 대 견인용 말의 비율 역시 증가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독일군은 나폴레옹의 대군단(그랑 아르메, Grand Armée)보다 몇 배나 많은 수의 말과 함께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사실, 모스크바에 이르는 데에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초반 몇 십 년이 지난 시점부터 전 세계적으로 말과 노새의 개체수가 떨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말은 부유한 도시에서 사라졌고, 부유한 나라의 들판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의 견인력이 계속 중요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힘을 대체하는 용도로서 더욱더 중요해지까지 했다. 쿠바의 농업은 1960년대부터 소련과 동유럽의 농기계와 원조를 통해 변화를 겪었고, 결국 동물 견인력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1989년 구소련 블록이 붕괴하면서, 쿠바 정부는 동물 견인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농업용 말의 개체수도 회복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동물은 황소였다. 황소를 번식시키고 대규모로 훈련시키면서, 그들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기반도 구축되었다. 황소 개체수의 회복세는 정말 극적이었다. 1960년 500,000마리에서 1990년 163,000마리까지 떨어졌던 황소의 개체수는 1990년대 말 380,000마리까지 증가하여, 40,000대의 트랙터를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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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laist | 2011/12/21 18:41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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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알고리즘을 살짝 가르쳐주면서 그 실행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짜면 웹상에서 바로 실행을 시켜주는 컴파일러 에뮬레이터를 찾던 중,
아주 재밌는 사이트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1. Applesoft BASIC 에뮬레이터
http://www.calormen.com/applesoft/
웹상에서 직접 베이직 프로그램을 짜서 실행시켜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한 샘플 프로그램들을 골라서 실행시켜볼 수도 있습니다.
샘플 게임 중 팩맨은 악당이 너무 빨라서 절대로 10초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었습니다. -_-;
어쨌든 잠시나마 추억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
문제는 알고리즘을 가르치기에 BASIC이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막상 유명한 정렬 알고리즘이나 검색 알고리즘을 구현해서 보여주려니
함수 정의도 불가능하고, 당연히 재귀 함수도 불가능했습니다.
GOSUB문을 쓰면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긴 했는데, 제가 잘 못다루겠더군요.
2. Codepad (온라인 컴파일러)
웹페이지 내에서 코드를 입력해서 submit 버튼을 누르면
코드에 문제가 있으면 에러메시지를 보여주고,
컴파일이 잘 되면 실행 결과까지 보여주더군요!
C, C++뿐 아니라 PHP, JAVA 등등을 모두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팩토리알 구하는 재귀 함수 만들어서 해봤는데 아주 잘 되더라구요. ㅎㅎ
근데 scanf를 이용해 키보드로 입력을 받으려고 했더니 그건 안되더군요-_-;;
입력을 받지 못한 채 Tiimeout이라는 결과만 출력되었네요.
어쨌든 페이지 디자인도 깔끔하고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3. ideone.com
Codepad와 거의 같은 온라인 컴파일러이며,
Codepad보다 더 많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scanf를 이용해 키보드로 입력을 받는 것도 되더군요!!
n! 구하는 프로그램 만들어서 n에 여러가지 값을 계속 대입해보며 놀았더랬습니다.-_-;;
4. OnlineCompiler.net
http://www.onlinecompiler.net/
codepad.org와 ideone.com에서는 온라인 상에서 프로그램의 실행결과를 보여주는 반면,
이 온라인 컴파일러에서는 프로그램의 실행파일을 만들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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